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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는 다양하고 수준높은 언어개발의 지름길
문자를 배우기 이전의 어린 아이들은 이야기를 들으면서 독서체험을 쌓아간다. 이야기를 듣는다는 것 자체가 곧 ‘듣는 독서’라고 할 수 있어서 이야기를 들으면 책을 읽은 것과 같다는 말이다. 이야기를 듣고나서 그 이야기를 가지고 함께 활동하고 대화를 나누면서 자기의 생각이나 상상을 표현하는 동안 어휘력이 늘어나고 다양한 언어를 구사하는 힘을 기르게 된다. 독서후 활동을 통해서 또 대화를 나누는 동안 어린아이들 마음 속에 감추어져 있던 생각이나 느낌이 함축성있는 말이 되어 나오게 될 것이다. 더 나아가서는 자신들의 마음 속에 있던 하고 싶은 이야기, 말로 표현하지 않고는 배길 수 없었던 많은 생각들이 밖으로 나오게 된다. 아이들은 그들의 생각을 상대방이 알아들을 수 있고 느낄 수 있도록 다양한 언어로 재구성하면서, 언어를 개발하고 어휘력을 늘리는 기회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언어구사력이 향상되고 문자를 배우게 되면서 독서를 전개시킬 수 있는 능력이 생겨지면, 그래서 어른의 도움없이도 자유롭게 책을 즐길 수 있는 시기가 되면 언어개발은 더욱 박차를 가하게 될 것이다. 다양한 어휘력이 책의 즐거움을 더하게 할 것은 뻔한 이치이며, 이는 또한 더욱 다양하고 깊이 있는 독서를 유도하게 된다. 이러한 독서활동은 나선의 원을 그리면서 독서능력을 향상시키고 독서의 재미에 빠지게 할 것이다.
독서를 많이 한 사람과 이야기하면 그렇지 않은 사람과 확실히 그 차이를 느낄 수 있다. 광범위하고 다양한 언어구사력으로 대화집단의 중심이 되며, 훌륭한 상상력과 사고력으로 주의깊게 남의 말을 경청하고 대응하기도 한다. 자기의 생각을 확실하게 표현하며, 상상력이 있기 때문에 남의 말도 정확하게 이해하며 듣는다.
얼마 전 50대 중반의 한 아주머니를 만난 적이 있다. 이 아주머니는 일반적으로 그 분과 비슷한 나이의 다른 아주머니와는 사뭇 다른 환경에서 자랐다. 육이오 동란이 나고 그 이듬해 아버지를 따라 가족 모두가 일본으로 건너갔다가 어린 시절을 일본에서 보낸 분이다. 물론 초등학교 중, 고등학교 등 모든 교육을 일본에서 받았다. 일본으로 건너 간 것은 다섯 살 때여서 우리 말을 잊어버려 거의 할 수 없었던 것은 물론이다. 친척의 중매로 좋은 총각이 있다고 하여 결혼하기 일년 쯤 전에 한국으로 건너와 삼촌댁에 살면서 모든 혼인준비를 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 아주머니의 말솜씨로 보아 그러한 사실을 거의 한나절이 지나도록 깨닫지 못할 정도였다.
이제는 한국에서의 결혼생활이, 어렸을 적부터 일본에서 산 기간보다 더 오랜 세월이 흘렀다고 했다. 처음에 시집와서는 아는 사람도 없고 이웃에 마실 갈 줄도 몰라(거의 아파트 생활이었다) 온종일 집안에만 있었고, 아기에게도 우리 말이 서툴러 책을 읽어 줄 수도 없었으며 그래서 아기에게는 그냥 일본말을 쓸 도리 밖에 없었다고 했다. 한참을 이야기하고 나니 금방은 알아차릴 수는 없었던 어렸을 때부터 해 온 일본말의 버릇이, 발음이나 이야기의 속도 등에서 가끔씩 느껴지기는 했다. 그러나 그 아주머니가 쓰는 언어의 폭은 나도 깜짝 놀랄 정도였다. 이미지가 풍부한 형용사하며 우리 일상생활에서 이제는 흔하게 쓰지도 않는 순수한 우리말의 어휘가 아주 자연스레 흘러나왔다. 언어구사력이 상식선을 훨씬 넘어서고 있었다.
그래서 궁금한 나머지 우리말을 어디에서 배웠는지 물어 보았다. 처음에 약 1-2년은 한국말을 배우기 위해 남에게 일본어를 가르쳐 보기도 했고, 그것도 여의치 않게 되자 거의 하루종일을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고 했다. 그리고 하루도 빼놓지 않고 시어머니와 시시콜콜한 것까지 함께 이야기했단다. 바로 그것이었다. 결혼 초에는 우리말을 할 줄 몰라 아기에게도 일본말을 해 버렸고 그림책도 읽어주지 못하던 분이 그렇게 폭넓은 어휘력을 가지게 된 것은.
독서를 통해 어휘력이 몰라보게 늘어났으며, 시어머니와의 대화는 바로 독서에서 얻은 언어의 실습이 되었던 것이다. 또 시어머니와의 대화에서는 오래전부터 써 왔던 옛스러운 순수한 우리말을 자연스레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래서 자동차가 정체 때문에 살짝살짝 브레이크를 밟듯이 끊어질듯 끊어질듯 속도가 느려졌다가, 그리고 일본말의 버릇이 발음속에 살짝 내비치면서 사브작사브작 흘러나오는 그 아주머니의 이야기는, 무엇인가 신비한 듯한 매력을 풍기면서 그가 쓰고 있는 언어를 즐겁게 감상하도록 만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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