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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하의 소녀 | 티에르 르냉 | 비룡소
◇ 운하의 소녀
- 티에리 르냉 글/비룡소/2002.2.28
- 현실적/중학 이상
- 이 작품의 계절적 배경은 '겨울'이다. 그것도 운하까지 꽁꽁 얼어붙게 만든 혹한의 겨울이다. 문학에서 겨울은 흔히 고통과 죽음을 상징한다. 표지의 그림도, 책의 시작도 심상치 않다.
한 마디로 이 책은 '성폭행'에 관한 이야기이다. 사라는 화실의 미술 선생과 은밀한 관계를 맺게 되면서 점점 말이 없어지고,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어 그 안에 자신을 가두어 버린다. 어린 시절 끔찍했던 기억을 가슴에 묻고 있는 사라의 담임 선생은 사라의 불안정한 모습에서 자신의 어린 시절을 발견하고 가까이 다가서려 하지만 사라는 좀처럼 마음의 문을 열지 않는다. 더구나 사라의 부모는 대화를 나눌 수조차 없는 경직된 사람들이다. 이러한 절망적인 상황에서 드디어 사라는 담임 선생에게 구원의 손을 내미는데...
이 책은 매우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음에도 분량은 짧은 편이다. 작가는 친절하게 주변 상황을 설명하지 않는다. 고도의 상징(이를테면 얼어붙은 운하)과 분위기 연출로 독자로 하여금 상상하고 생각하게끔 하는 시간적 여유를 마련한다. 이렇듯 책을 읽는 묘미를 느끼게 만든 것도 이 책의 장점 중 하나이다. 더불어 이 책의 놀라운 점은 미술 선생과의 관계를 두려워하면서도 어떤 면에서는 스스로 즐기기도 했다는 사라의 뼈아픈 자책을 표현했다는 점이다. 이런 고백에 담임 선생의 현명한 대답은 가슴에 긴 여운으로 남는다.
"넌 어떤 순간에도, 그 사람에게 몸을 준 게 아니야. 절대로. 그 사람이 네 몸을 훔친 거야. 그 사람이 널 훔쳤다고."(p.70∼71)
"네가 어떻게 느꼈느냐 하는 건 너만의 문제야. 네가 좋아했다 하더라도 그 사람이 그것을 이용할 권리는 없어. 벌을 받을 사람은 그 사람이지, 네가 아니야."(p.72)
(평가자 : 김주희 I 사무국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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