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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더불어 희망을 보다
잃어버린 호수. 앨런 세이 글 ‧ 그림, 김세희 옮김, 마루벌. 2003.
‘지난 여름 아빠네 집으로 갔다’는 사실은 한 가족이 한 지붕 아래 살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일까? 더군다나 아빠는 바쁠 때는 한 마디도 하지 않는 것을 말하므로 엄마 아빠와 함께 살고있지 않는 이유를 정당화하고 있다. 가져갔던 책은 다 읽어버렸고 텔레비전 보는 것도 싫증나서 낡은 잡지에서 오려낸 산이나 강, 호수의 사진을 벽에 붙여본다. 사진에서 보여주는 낚시를 하거나 카누를 타는 사람들의 모습이 아빠의 추억을 건드려, 옛날 아빠가 어렸을 적 할아버지와 함께 가곤 했던, 잊고 살았던 그래서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던 자기들만의 비밀의 호수를 아들과 함께 찾아나선다.
아빠가 준비해준 꼭 맞는 운동화에서 비록 말은 없지만 아들에 대한 관심과 사랑, 그리고 비밀장소이니까 친구들에게 말하지 말라는 아빠의 말은 부자간의 은밀한 정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에게 들켜버린 자기들만의 비밀장소가 이제는 더 이상 그들만의 은밀한 장소가 되지 못했다. 비록 아들은 그곳에서 캠핑을 한다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하지만 아빠는 둘 만의 장소를 찾아 다시 걷기 시작한다.
비바람이 내리쳤지만 아빠와 함께하는 텐트 안은 따뜻하고 아늑하다. 소시지와 과일 말린 것으로 먹는 저녁식사가 맛있다. 다음날 다시 희망을 찾아 떠난다. 아빠와 단 둘이서 언덕을 넘고 산을 넘고 한참을 걸어 숲 속을 빠져나왔다. 날이 어두어지자 모닥불을 피우고 별똥별을 세면서 아빠와 나누는 이야기는 아주 흐뭇하다. 그렇게 흐믓한 마음으로 잠이 들었다. 온 세상을 황금색, 오렌지색, 노란색으로 물들이는 아침해가 떠오를 때 아빠가 나를 흔들어 깨운다. 세상사람들이 아직 찾지못한 우리만의 호수, 찾아질 것 같지 않던 그 비밀의 호수가 우리 앞에 펼쳐진다. 우리는 한참동안 물빛이 조금씩 변하면서 밝아오는 호수를 아무 말없이 바라보았다. 한마디의 말도 필요없다. 아침밥을 먹고 산에 올라가 내려다 본 호수는 우리의 희망이다. 어디에도 사람의 흔적은 없고 아빠와 단 둘이다.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자칫하면 서먹할 것 같은 아빠와의 관계가 자연 속에서 긴밀해진다. 우리집이 곧 아빠의 집이어야하는데, 왜 아빠의 집에 가야하는지 우리의 정서로는 이해가 안될 수도 있다. 이러한 무거운 사실이 아빠와 함께 자연 속으로 동화되면서 가벼워지는 느낌이다. 둘만의 비밀스러운 호수를 찾아 자연으로 빨려들어가 드디어 희망을 찾는다. 말이 없던 아빠가 말을 많이 하게 될 수 있다는 희망, 그건 또 아빠의 집과 우리집이 합쳐져 더 이상 아빠의 집으로 가지 않아도 될것이라는 희망은 너무 지나친 상상일까?
아주 즐거운 마음으로 읽을 수 있는 책이다. 관념적으로나 사실적으로나 아빠와 나의 관계를 충분히 상상을 하면서 머릿속에 이미지를 그릴 수 있다. 그런데 매끄럽게 이미지를 그리며 읽어나가다가 걸리는 곳이 두어군데 있다. 그냥 지나쳐버릴 수도 있겠지만 우리말로 옮기는데 얼마나 적확한 말을 찾았는지의 문제이다. 예를 들면 14쪽의 “나는 곧 헐떡거리기 시작했습니다” 대신에 “나는 곧 헉헉거리기 시작했습니다”로 바꾼다면 더욱 적합한 말이 되지 않았을까? ‘헐떡’과 ‘헉헉’은 그 느낌이 확실히 다르다. 또 16쪽의 “모두가 발견한 호수가 되다니.”라는 아빠의 중얼거림은 자신의 비밀장소를 들켜버린 것에 대한 아쉬움, 섭섭함, 약간(?)의 언짢음마져도 배어있어야 할 것 같은데 그런 마음을 나타내기에 부족하다. 그리고 이 문장은 똑부러지게 무언가를 표현해 주는 우리말이 아니다. 어딘가 어설프게 번역된 느낌이 든다. 원문에 손상이 가지 않는다면 “모두에게 들켜버리다니.” 라고 아빠가 중얼거리게 했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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